전태일평전 손글씨 이어쓰기 첫번째 현장행사 개최
본문
https://campaigns.do/campaigns/1791/stories/1127
- 전태일재단 평전 필사 캠페인 온라인 페이지 -
3월 4일 오전 11시,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평전》 손글씨 이어쓰기의 첫 시작을 열었습니다.
이날 자리에는 《전태일평전》의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의 아내 이옥경 여사, 평전 기획자인 장기표 선생의 아내 조무하 여사,
가수 정태춘, 전순옥 전태일기념관 관장, 박승흡 전태일재단 이사장, 성공회 신부 송경용,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윤정숙 대표,
인권운동가 박래군, 문길주 전태일노동상 수상자, 청년 약사 정혜연이 함께했습니다.
“전태일의 뜻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전태일재단 박승흡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11월 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치며 분신 항거한 청년 전태일의 뜻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수많은 ‘오늘의 전태일’들이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박 이사장은 “11월 13일을 ‘전태일과 일하는 사람의 날’로 세워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 연대와 나눔의 정신을
대한민국의 공적 가치로 세우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는 시작”
전순옥 전태일기념관 관장은 이날 자리에 대해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자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영래 변호사와 장기표 선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전태일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전태일의 정신은 더 낮은 곳의 어려움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 속에서 살아난다”며
“오늘 시작된 필사가 기념관에 영구히 보존되고 전시되어, 우리가 함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순수한 분노와 연민, 전태일”
《전태일평전》의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의 아내 이옥경 여사는 평전을 집필하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늘 쫓기듯 도망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옥탑방에서 원고를 쓰기도 하고, 지하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너무 덥거나 추울 때는 다방 한쪽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는 전태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수한 분노, 순수한 연민.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그런 순수한 연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영래 변호사 역시 우리가 그런 관점을
조금 더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사정권 시절, 숨겨야 했던 원고들
《전태일평전》의 기획자인 장기표 선생의 아내 조무하 여사는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 평전을 준비하던 당시의 긴장과 어려움을 전했습니다.
조 여사에 따르면, 장기표 선생은 한때 전태일의 일기와 관련 자료 복사본을 쌍문동 뒷산 어딘가에 묻어 두었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자료의 복사본이 한 부 더 남아 있었습니다. 장 선생이 도피 생활을 하거나 감옥에 가 있던 시기, 가택 수색이 잦았던 상황에서
조 여사는 집 마당 한쪽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자료를 묻었습니다. 이후 들키지 않도록 그 위를 시멘트로 두껍게 덮어 숨겨 두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전태삼 씨가 곡괭이로 시멘트를 아무리 찍어도 쉽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한참 애를 쓴 끝에야
겨우 그 안에 있던 자료들을 꺼낼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읽기 어려웠던 책”
인권운동가 박래군은 대학 시절 처음 《전태일평전》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활동하며 다시 책을 보게 되었지만 그때는 끝까지 읽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는 이소선 어머니에게 책을 보았느냐고 물었을 때의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안 본다”고 하셨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기절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날 그는 전태일이 마지막 순간 어머니에게 다짐을 받는 장면을 필사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깨운 사건”
가수 정태춘은 전태일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우리에게 광주민주화운동과 전태일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깨우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태일로 인해 깊이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깨어났고, 인간과 노동,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은 덜 부끄러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태일은 우리에게 불 같은 영감을 남긴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연대의 본질을 보여주는 ‘바보회’”
박승흡 이사장은 평전 속 ‘바보회의 사상’ 대목을 필사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이야말로 연대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좋다, 우리는 바보다”라는 선언은 체념이 아니라 각성의 선언이었고, 한 사람의 깨달음이 모두의 실천으로 확장되는 출발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대들 전체의 일부인 나”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윤정숙 대표는 전태일 유서의 마지막 문장을 필사했습니다.
“어젯밤 다시 읽는데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는 전태일의 유서에 나오는 문장
“그대들 전체의 일부인 나” 를 언급하며
“이 한 문장에 전태일 정신이 응집되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 평전은 청년 윤정숙이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만든 책”이라며,
전태일의 정신과 함께 그것을 기록한 조영래 변호사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제 심장에 박혀 있습니다”
성공회 신부 송경용은 45년 전 우연히 길거리에서 평전을 읽게 되었던 기억을 전했습니다.
당시 평화시장 시다로 일하던 어린 노동자들과 야학을 하던 시기였고, 바람에 날려 떨어진 책을 주워 밤새 읽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제 심장에 깊이 박힌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은 이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 돌봄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시 평전을 읽기 시작합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 센터장은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전태일평전》을 읽고 토론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다시 평전을 읽으며 전태일 열사의 길을 따라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11월 13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의 전태일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전태일재단 정혜연 이사는 이날 자리에서 《전태일평전》이 만들어지고 이어져 오는 과정 속에 수많은 어려움과
윗세대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소중한 가치들이 다음 세대에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오늘날에도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청년 노동자의 과로사 같은 노동 현장에서
과로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바로
‘오늘의 전태일’이라고 말하며, 그들이 전태일의 삶과 정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깊은 사명감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쓰기 운동은 9월까지 진행하며, 3월 18일에는 전태일의 후예, 봉제노동자와 소공인이 참여합니다.
시민들도 전태일기념관과 온라인을 통해 언제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전태일평전 필사 캠페인 - 전태일의 꿈길, 필사로 잇다 -
https://talks.campaigns.do/goals/chuntaeil1113transcribe
- 다음글전현희 노동존중실천단장 간담회 26.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