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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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영원한 불꽃
전태일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일터를 빼앗기고 낙심한 아버지, 몸져누운 어머니. 낯선 서울에서 소년가장이 된 그는 가마니를 덮고 자며 구두닦이, 껌팔이, 손수레 뒤밀이 등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일하다가 청계천 평화시장을 만났습니다. 한 달 월급 1,500원. ‘시다’로 출발해 1년도 안 되어 미싱사가 된 그는 어린 ‘여공’들의 비참한 처지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노동자 전태일은 차비를 털어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는, 밤길을 걸어 판잣집이 있던 도봉산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들을 도우려 재단사가 되었으나 사장에 밉보여 해고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피를 토하고 눈을 감은 여성노동자 앞에서, 인간을 기계로 취급하는 물신(物神)의 벽을 허물겠다고 맹세한 굳센 노동자 전태일은 빚을 내어 구한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끼고 살며, 평화시장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들을 꼼꼼히 조사했습니다.

동료들도 모았습니다. 여태껏 죽어지내던 젊은 재단사들의 모임 ‘바보회’를 조직하고, 공장을 돌며 근로조건 개선을 외치던 ‘바보회 회장 전태일’은 다시 쫓겨났습니다. 근로감독관을 찾아갔지만, 법과 정부는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길을 찾아 버둥거리던 전태일은 자신의 몸을 던질 각오를 다지고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평화시장 근로조건 개선의 구심이 될 삼동친목회를 결성했습니다.
1970년 10월 6일 노동청에 삼동친목회 회원들이 낸 근로조건 개선 진정서가 접수되었고, 다음날 경향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이라는 제목을 단 평화시장 기사가 실렸습니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떨리는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실패로 끝났고, 입술을 깨문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준비합니다. 11월 13일 오후 2시 청계천 인간시장, 불덩이가 된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와 수기를 바탕으로 고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평전』을 썼고, 전태일의 삶과 죽음은 노동의 긍지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역사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전태일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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