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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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항일 농민운동에 나선 아버지가 일제에 끌려가 학살당하자, 남은 가족은 소작 부칠 땅마저 떼이고 고향을 등진 채 더부살이 신세가 되었고, 어머니는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개가했습니다. 이소선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학교에 다니기를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일제강점기 말에는 방직공장 강제노역에 끌려갔다가 탈출에 성공해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해방 후 전상수와 결혼해 장남 태일, 차남 태삼, 장녀 순옥, 차녀 순덕을 낳았습니다. 결혼 전 남편은 대구 파업에 가담했다가 일터를 빼앗긴 뒤 봉제 솜씨를 살려 작은 공장을 꾸렸는데, 연이은 사업 실패로 낙담해 술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소선은 행상, 식모살이 등 뼈가 휘도록 일을 해 생계를 꾸리면서, 자식들에게 작은 거짓말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듣고 달려와 오열하던 이소선은 “우리 어머니는 나를 이해해주실 거야… 어머니 제 뜻을 꼭 이루어주세요!”라는 아들의 유언에 고개를 끄덕이고 인간해방의 길에 나섰습니다. 경찰과 정보기관의 회유를 뿌리치고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이소선은 아들의 친구들을 아우르며 청계피복노동조합을 결성했고, 군사독재에 맞서다 세 차례 옥고를 치렀습니다.
1986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의 버팀목이 되었으며, 이석규 열사 장례위원장으로서 노동자대투쟁을 보듬고 전노협 고문으로 민주노조를 이끌어 노동자의 어머니로 존경받았습니다. 1989년, 1998년 두 번에 걸쳐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농성을 유가족들과 함께 전개하며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언제 어디서나 투쟁하는 노동형제들의 현장을 찾으며, 운명하는 순간까지 “노동자는 하나” 라는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를 살아 숨 쉬는 펄떡이는 전태일로 부여안아 일으켜 세워주신 이소선 어머니.
당신은 역사가 영원히 기억할 민중의 어머님이십니다.

전태일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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